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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신에게 다가가려 했던 사나이

나비넥타이 2009. 11. 12. 10:58

I. Ronaldo - A Legend

 

 

 

II. About Ronaldo

 

 

 

'골을 넣고 싶다면 호나우두에게 패스하면 된다. 그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파울로 넘어트리는 것 뿐이다.'


 

2008년 2월 13일, 이탈리아 밀라노 산 시로 경기장. 세리에A 16라운드 AC밀란과 리보르노의 경기는 원정팀 리보르노가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후반전 11분, 나폴리와의 올 시즌 첫 경기이자 부상 복귀전에서 2골을 몰아치며 건재함을 과시했던 호나우두가 교체 투입됐다.

복귀 전 이후 경미한 부상으로 우려를 샀던 호나우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듯 피치 위로 뛰어 들어왔다. 투입된 지 3분 만인 후반 14분, 호나우두는 문전 혼전 상황에서 쓰러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내 그 파괴력을 증명했다.

하지만 쓰러진 호나우두는 왼쪽 무릎을 잡고 비명을 내질렀고, 그 비명은 그가 다시 일어설 수 없으리란 걸 알려줬다. 밀란의 다니엘레 보네라는 절망감이 가득 담긴 호나우두의 외침을 전해들었다.

"또 그거야… 지난 번이랑 똑같아!"

2000년 4월 12일 로마 올림피코 스타디움. 라치오와의 원정 경기에서 당한 오른쪽 무릎 부상을 말하는 것이다. 페르난두 쿠투를 앞에 두고 특유의 헛다리 짚기를 시도하던 호나우두는 교체 투입 10여분 만에 아무런 접촉없이 홀로 나뒹굴었다. 팀 동료와 상대편 선수들, 아니 축구와 관련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을이 쓰러진 황제의 모습에 할말을 잃었다. 그 경기 역시 부상 복귀전이었으며, 그는 이 부상으로 길지 않은 선수 생활 중 2년 여를 날려버려야 했다. 그 2년 간 도무지 인간의 것으로 믿기 어려운 그의 능력도 상당 부분 감퇴됐다.

당시 오른쪽 무릎 슬개건이 완전히 끊어져버렸던 호나우두는 이제 왼쪽 무릎 슬개건을 잃었다. 의료 기술이 발달해 이번에는 9개월 정도의 재활 기간을 거치면 돌아올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당시 부상에서 돌아온 호나우두는 월드컵에서 8골을 몰아치는 마법 같은 플레이로 완벽한 부활을 알렸다.

하지만 어느 덧 3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는 호나우두가 양쪽 무릎이 모두 만신창이가 된 채 최고의 기량을 되찾을 수 있을지 여부는 오직 '신'에게 달렸다. 단지 기도하고 믿을 뿐이다. 우리 시대 최고의 축구 선수가, 그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할 수 있게 해달라고, 그저 기도할 뿐이다.

'일어나라, 호나우두…!'

"이 시대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마라도나 이상의 선수와 같이 호흡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뻐해야한다. 호나우두의 실력은 74년 게르트 뮐러의 3배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나는 후한 사람이 아니다. 그를 감히 아무에게나 비교하지 말라. 그는 그 자신일 때 가장 위대하다." - 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 축구 영웅, 전 바르셀로나 선수-감독)

호나우두에 대한 설명은 크게 필요치 않을 것이다. 그가 프로 생활을 시작한 이래 현재까지 걸어온 경력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페이지가 가득찰 정도다. 오직 '호나우두'라는 이름과 등번호 9번을 말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60년대와 70년대의 펠레, 80년대와 90년대에 마라도나가 있었다면 90년대와 2000년대는 호나우두가 있었다. 그는 축구 역사에서 그런 위치를 차지하기에 충분한 인물이다.

호나우두는 1976년 9월 16일, 벤투 히베이루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년월일을 이전의 '축구황제' 펠레가 은퇴한 9월 22일로 알려져있으나 이는 출생신고가 늦게 된 탓이다. 호나우두의 이름은 그의 출산을 담당한 의사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앞니 사이가 벌어졌던 호나우두는 말수가 적은 내성적인 아이였다. 학업 성적도 좋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 축구가 시작되면 모든 일이 호나우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지역 유소년 클럽에서 일찌감치 주목받은 호나우두는 1990년, 14살의 나이로 2부리그 클럽 상 크리스토방에 입단했고, 곧바로 무수히 많은 골을 넣기 시작했다. 소년 호나우두는 골을 넣어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내성적인 호나우두는 자신의 정체성을 골에서 찾았고, 골을 넣는 일은 당연한 것이이었다. 상 크리스토방의 감독 알프레두는 호나우두가 그토록 많은 골을 넣고도 즐거워 하지 않는지 물었다. 대답은 간단했다.

"골을 넣기 위해 제가 여기 있는 것 아닌가요?"

호나우두의 활약상은 브라질 축구 스타 자일지뉴의 눈에 띄었다. 호나우두의 에이전트를 자처한 자일지뉴는 호나우두를 브라질 전국에 알렸다. 호나우두는 브라질 17세 이하 청소년 대표로 선발되어 남미 청소년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고, 수많은 명문 클럽들의 제의 속에 최고액을 제시한 크루제이루에 입단한다. 호나우두는 크루이제이루에서 활동한 60경기에서 58골을 넣었다. 그는 곧바로 브라질 국가 대표로 소집됐고, 18세의 나이로 1994 미국 월드컵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호나우두가 공을 가지고 있다면 이미 골을 반쯤은 기록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나우두를 무대의 중심으로 데려온 자일지뉴의 말이다.

브라질 최고의 선수라는 타이틀은 곧바로 호나우두를 유럽으로 데려다주었다. 선배 호마리우의 조언으로 빅클럽들의 고액 제의를 뿌리치고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에 입단한 호나우두는 1994/1995 시즌에 리그 32경기에 출전, 30골을 몰아쳤다. 다음 시즌에도 시즌 초반 11경기에서 10골을 몰아치며 무시무시한 득점행진을 계속했다.

국가 대표팀에서도 주전 자리를 굳혔다. 하지만 대표팀과 클럽팀을 오가며 이어진 체력 소진과 점점 더 거칠어지는 상대 수비수의 견제로 그는 첫번째 부상을 당한다. 1996년 3월 그는 무릎 수술을 받는다. 이 수술에서 호나우두의 넓적 다리 근육이 지나치게 많이 발달되어 있음이 드러났다. 이 근육이 그의 폭발적인 플레이의 원천이었지만 이것이 무릎의 슬개건을 지나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인간의 몸이 신에 가까운 기술을 따라잡지 못한 것은 그의 프로 경력이 시작되는 시점이 이미 발견된 징후였다.

부상에서 돌아온 호나우두는 66차례 공식 경기에서 55골을 넣는 것으로 네덜란드 생활을 마감했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에 참가한 호나우두는 충격패를 당한 일본전에서 벤치에 앉아 있었다. 하지만 이후 헝가리, 가나, 나이지리아 전에 연속골을 넣었다. 나이지리아의 준결승전, 호나우두는 3-1로 앞선 상황에교 교체됐고, 브라질은 역전패를 당하며 금메달 도전에 실패했다. 호나우두는 패배에 대한 비난에서 비켜있었고, 1996년 여름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적한다. 

 

 

 

바르셀로나에서 유럽 정상에 오른 호나우두 (UEFA Winners' Cup)

 

 

"난 마라도나, 에우제비우, 지단 그리고 훌리트를 봤다. 하지만 1996년의 호나우두는 그 누구도 따라잡을 수 없는 선수였다. 난 매일 호나우두와 함께 일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50미터 거리를 달려 수비수 5명을 제치고 골을 넣곤 했다. 굉장히 놀랐다. 여지껏 그런 플레이를 본적이 없기 때문이다." - 주제 무리뉴(전 첼시 감독, 전 바르셀로나 코치)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한 것은 고작 1시즌 뿐이다. 하지만 호나우두 스스로 그를 둘러싼 계약상의 문제로 바르셀로나를 떠나게 됐을 때 눈물을 흘렸을 정도로 황홀한 시기를 보냈다. 호나우두가 바르셀로나에서 보낸 1996/1997 시즌은 그 자체로 전설이 됐다.

20살의 호나우두는 스페인 리그 37경기에서 34골을 넣어 득점왕에 올랐다. 바르셀로나는 비록 리그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지만 호나우두의 활약에 힘입어 코파 델레이와 UEFA 컵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두 대회에서 호나우두는 각각 8골과 5골로 최다 득점자였다.

콤포스테야와의 경기에서 넣은 골은 아직도 인구에 회자는 명장면이다. 호나우두는 14초 동안 50여 미터거리를 달려 5명의 수비수를 제치고 골망을 갈랐다. 그 수비수들이 호나우두의 유니폼을 잡고 늘어졌음에도, 누구도 그를 막을 수 없었다. 당시 바르셀로나 감독이었던 보비 롭슨은 호나우두의 골에 머리를 감싸쥐며 흥분을 주체할 수 없었다.

"호나우두가 바로 전술입니다."

전 세계로 타전된 그의 득점장면은 곧바로 그에게 '축구황제'의 지위를 선사했다. 호나우두는 1996 FIFA 올해의 선수로 꼽혔고, 나이키는 농구의 마이클 조던에 이어 축구의 호나우두 시대가 왔다며 브라질 대표팀, 그리고 호나우두 개인과 전속 계약을 맺었다.

"호나우두를 막는 방법? 그런 것은 없다." - 로베르토 아얄라(전 아르헨티나 대표 수비수)

마시모 모라티 구단주의 엄청난 구애 속에 호나우두는 1997년, 인터 밀란으로 이적했다. 시즌권이 16000여석 정도 판매되던 인터밀란은 호나우두가 입단하자 5만석이 넘는 시즌권을 팔아치웠다. 인터밀란에 각종 기업 스폰서가 붙기 시작했고, 호나우두 관련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기 시작했다. 인터밀란은 당시 최고액 이적료로 호나우두를 데려왔지만 그 이상의 이득을 얻었다.

호나우두의 득점 행진은 세계에서 가장 수비가 강한 리그로 알려진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도 거침이 없었다. 리그 32경기에서 25골을 넣은 그는 아쉽게 득점왕 타이틀을 놓쳤으나 팀에 UEFA컵 우승컵을 안겨줬다. 유벤투스와의 경기에서 호나우두가 얻어내야했던 페널티킥이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무산되지 않았면 리그 우승도 인터밀란의 몫이 됐을 것이다.

호나우두는 1997년에도 FIFA 올해의 선수로 선정됐고, 시즌 총 득점은 44경기 34골이었다. 이탈리아는 호나우두를 '일 페노메노(Il Fenomeno)'로 부르기 시작했다. '신이 내린 재능'이라는 뜻이었고, 그 자체로 하나의 현상이라는 의미가 담겨있었다.

"호나우두는 페라리 엔진을 달고 뛰는 득점기계다. 그는 매우 계산적이며, 힘이 넘치고, 독자적으로 팀의 승리를 이끌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 - 호르헤 발다노(레알 마드리드 축구영웅)

1998 프랑스 월드컵은 호나우두의 황제 즉위식이 될 것으로 여겨졌다. 브라질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우승후보 0순위였고, 호나우두는 이미 '축구황제'로 불렸다. 스코틀랜드와의 개막전부터 호나우두의 플레이는 모두의 경탄을 자아냈다. 네덜란드를 꺾고 결승에 오르기 까지 호나우두는 집중 견제 속에서도 4득점 2도움을 기록했다. 개최국 프랑스와의 결승전이 열리기 이전에 그가 이미 대회 MVP로 결정되어 있었다.

하지만 프랑스와의 결승전은 호나우두의 축구 경력에 큰 트라우마로 남게 된다. 동시대 최고의 선수로 늘 비교되어온 지네딘 지단이 헤딩으로 두 골을 넣어 브라질을 침몰시켰고, 호나우두는 무기력하게 패배를 받아들여야 했다.

결승전이 끝난 뒤, 호나우두의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나우두가 결승전을 앞두고 발작을 일으켰으며, 무리하게 출전을 강행했다는 것이다. 단순 발작일 뿐이었지만 호나우두는 모든 책임을 뒤집어 썼고, 1999 코파 아메리카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어 이를 만회했다. 하지만 이후 크고 작은 부상이 뒤따랐고, 인터밀란에서의 두번째 시즌에는 19경기에 나서 14골을 넣는데 그쳤다.

1999/2000 시즌, 잠복해있던 위협이 호나우두를 덮쳐왔다. 계속된 경기 속에 호나우두의 슬개건은 부상 복귀전이었던 라치오 원정 경기에서 완전히 기능을 상실했다. 프로 경력 초기부터 우려됐던 슬개건 문제가 결국 대형 사고로 이어졌다. 서둘러 경기장에 돌아오고 싶었던 그의 의지는 그를 나락으로 떨어트렸다. 인간의 슬개건은 신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호나우두는 병상과 재활 센터에서 2년을 보내야 했다.

 

 

 

월드컵을 제패한 호나우두 

 

"호나우두를 90분 간 막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프란츠 베켄바우어(독일 축구 영웅)

오랜 부상 끝에 성사된 호나우두의 복귀전은 인터밀란 팬들 뿐 아니라 축구를 사랑하는 지구상의 모든 이들의 관심을 모았다. 2001년 12월, 그라운드로 돌아온 호나우두는 브레시아와의 경기에서 시즌 첫 골을 넣었다. 호나우두의 득점 소식은 동시에 이탈리아 전역의 경기장에 전달됐고, 모두가 기립 박수로 황제의 귀환을 반겼다. 호나우두는 잔여 시즌 동안 10경기에 출전해 7골을 넣었고, 브라질 대표팀에 복귀했다.

2002 한국/일본 월드컵은 뼈를 깎는 고통 속에 돌아온 '축구황제'의 한풀이 무대였다. 여전히 비호 같은 몸놀림으로 더욱 더 날카로운 결정력을 과시한 호나우두는 우승까지 7경기에서 8골을 넣으며 월드컵 득점왕 마의 6골 벽을 넘었고, 브라질은 전승으로 통산 5회 우승을 달성했다.

독일과의 결승전에서 홀로 2골을 몰아친 호나우두는 다시 축구계의 정점으로 돌아왔다. 당시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경기장을 찾아 직접 볼수 있었던 것은 필자에게도 생애 최고의 기억 중 하나로 남아있다.

월드컵이 끝난 뒤에는 대한민국과 친선 경기를 벌이기도 했다. 브라질은 4강 신화로 기세를 올리던 한국에 고전했지만 호나우두의 2골에 힘입어 3-2 승리를 거뒀다. 자갈루 감독의 100번째 승리를 기념하는 경기였다. 당시 호나우두를 상대한 한국 선수들도 호나우두의 특별함에 혀를 내둘렀다. 포르투갈의 에이스 루이스 피구를 틀어막었던 이영표는 "TV에서 보기에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 마주쳐 보면 별거 아니었어요. 근데 탁월한 스피드의 호나우두는 정말 대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최진철의 대답은 호나우두의 위력을 더욱 생생하게 전해준다.

"호나우두는 정말 안보여요. 수비가 잘 볼 수 없는 사각지대에 서있다가 어느새 뛰어들어가서 골을 집어넣었어요. 수비를 장난하듯이 가지고 놀아요."

인터밀란의 헥토르 쿠페르 감독과 마찰을 빚었던 호나우두는 월드컵이 끝난 뒤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스페인으로 돌아갔다. 2002년에 3번째로 FIFA 올해의 선수가 된 호나우두는 2002/2003 시즌, 바르셀로나 시절 들어보지 못했던 스페인 리그 우승컵을 들어올렸고, 2003/2004 시즌에 스페인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며 건재함을 과시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는 올드 트라포드에서 해트트릭을 작렬시키며 영국 팬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받기도 했다.

"대단했지! 해트트릭이라니! 하지만 호나우두는 지금 그의 최고의 상태를 갖추지 못했다. 내가 바르셀로나 시절에 봤던 모습의 20%도 안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그렇게 환상적인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0%도 안되는 상태로 펠레만큼의 플레이를 하고 있다." - 보비 롭슨(잉글랜드 축구 영웅, 전 바르셀로나 감독)

브라질 대표팀에서도 여전한 활약 속에 2006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본선행을 이끌었다. 숙적 아르헨티나와의 일전에서는 3개의 페널티킥을 얻어내어, 페널티킥으로만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진기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또한번의 월드컵 우승을 향한 호나우두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스페인 리그에서 3시즌째 20골이 넘는 득점을 해오던 호나우두는 2005/2006 시즌에 급격히 체중이 불어나면서 14골을 넣는데 그쳤다. 미처 발견되지 않은 갑상선 기능 저하가 호나우두에게 '돼지'라는 불명예스런 꼬리표를 안겨주었다.

"어느 날 히우 지 자네이루에서 등장했고, 다음은 네덜란드. 그리고 카탈루냐에서 별이 됐다. 이탈리아에서 우상이 됐고, 스페인에서는 신이 되었다." - 에릭 칸토나(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축구 영웅)

육중한 체구로 참가한 2006 독일 월드컵. 호나우두는 일본과 가나를 상대로 3골을 터트리며 월드컵 통산 15호골로 최다골 기록을 세웠다. 2번의 우승과 1번의 준우승, 1번의 득점왕과 1번의 MVP. 월드컵의 최고의 사나이가 된 호나우두였지만 프랑스와 지단이라는 트라우마를 다시 안겨줬다. 프랑스와의 8강전에서 호나우두는 원톱으로 기용되 상대 밀집 수비를 뚫지 못했다. 반면 지단은 브라질의 중원을 마음 껏 휘저으며 결승골을 어시스트, 또다시 브라질을 무너트렸다.

호나우두와 지단은 이미 레알 마드리드의 팀 동료로 막역한 사이가 되었지만 호나우두를 응원하는 입장에서 프랑스와 지단을 꺾고 싶다는 아쉬움은 못내 풀리지 않았다. 지단은 이 대회를 끝으로 현역 생활을 정리했고, 호나우두도 더이상 브라질 국가 대표로 선발되지 못했다.

호나우두와 지단은 동시대를 살아오면서 언제나 비교대상이 되어왔다. 두 선수 모두 자신의 힘으로 월드컵 우승의 주역이 됐지만 호나우두에겐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가 부족했고, 두번의 맞대결에서 당한 패배는 지단 팬들을 우쭐하게 해왔다. 그러나 정작 지단은 호나우두를 최고로 꼽았다. "호나우두는 내가 함께 뛰어본 최고의 선수다. 그는 정말 예외적인 능력을 지닌 선수이고, 그의 플레이는 나를 완전히 매료시켰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불편한 관계를 유지한 것으로 알려진 라울 곤잘레스의 반응도 다르지 않다. "레알 마드리드 어느 선수 보다도 위에 있는 존재다."

스페인 리그에서 호나우두와 지단을 모두 상대했던 프란도 호나우두의 손을 들어줬다.

"물론 지단은 명선수다. 하지만 마라도나와 비교하면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든다. 경기장 위에서의 존재감의 차이라고 할까? 예를 들어 마라도나는 혼자 경기를 결정짓는 일이 가능하지만, 지단에게는 그 정도의 강함은 없다. 마라도나와 비교할 수 있는 선수는 호나우두 뿐이다. 경기장에서 그 정도로 무서운 선수는 없다. 수비의 구멍을 일순간 발견하고, 그곳을 한번에 돌파해서 골을 넣는다. 호나우두는 이 시대에 혼자 힘으로 경기를 결정지을 수 있는 유일한 선수다."

3년째 리그 우승을 이루지 못한 레알 마드리드는 2006/2007 시즌, '우승청부사' 파비오 카펠로 감독을 선임했다. 과거에 호나우두를 세계 최고의 선수라고 극찬했던 그이지만 비대한 체구의 호나우두는 그의 플랜에서 제외됐다.

전반기 내내 거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벤치 신세를 진 호나우두는 결국 2007년 1월, AC밀란으로 전격 이적한다. 그것은 레알 마드리드에서 '갈락티코' 시대의 종말을 뜻했고, AC밀란의 브라질 커넥션을 더욱 두텁게 해주었다.

"마라도나 이후 내가 마주쳤던 가장 위대한 적수다. 그는 용감한 선수이며, 절대 비겁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며, 그의 기술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 - 파올로 말디니(이탈리아 축구영웅, AC밀란 선수)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는 AC밀란 의료진은 호나우두의 몸상태를 재점검했다. 그에게서 갑상선 기능 이상이 발견되어 비만의 원인을 찾아냈다. 체중 감량에 성공했고, 잔부상을 치료하고 그라운드에 선 그는 첫 경기에서 골대를 때린 것을 시작으로 친정팀인 인터밀란과의 경기를 비롯해 총 14경기에 나서 7득점 4도움을 올려 여전히 최고의 골잡이임을 과시했다.

호나우두의 활약에 힘입어 승점 감점과 함께 최악의 시즌을 보내던 AC밀란은 세리에A에서 4위를 차지,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을 확보했다. 레알 마드리드에서 이미 챔피언스리그 경기를 소화하면서 AC밀란의 유럽 우승 멤버에는 이름을 올리지 못했으나 그가 리그에 집중해준 덕분에 인자기가 챔피언스리그에 힘을 쏟을 수 있었다.

2006/2007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감했음에도 2007/2008 시즌을 앞둔 훈련 도중 부상이 다시 찾아왔다. 호나우두가 2007/2008 시즌 첫 경기를 치르기 까지 부려 반년의 시간이 걸렸다. 칼리아리 원정에서 시즌 첫 경기를 소화한 호나우두는 당시 페널티킥을 얻어내고 오른발 슛으로 골대를 강타하는 등 인상적인 경기력으로 팀의 역전승에 기여했으나 이후 다시 부상을 당했다.

그리고 다시 2008년 1월, 휴식기를 마치고 재개된 세리에A 18라운드 일정을 통해 돌아온 호나우두는 나폴리를 상대로 2골을 터트렸고, 동향 후배 카카, 파투와 찰떡궁합을 보였다. 이탈리아 언론은 이들을 '카파호(Ka-Pa-Ro, 영국의 엘리트 집단이 '꿈을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설립한 자동차 회사 이름을 빗댄 것이다)' 트리오로 불렀고, 호나우두는 밀란에서 또다시 전성기를 꽃 피울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호나우두의 컨디션은 아직 50%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그렇게 놀라운 모습을 보였다."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의 말이다.

하지만 그는 다시 쓰러졌다. 인간 한계에 도전한 호나우두. 그라운드에서 최고의 경기력을 뽐내기 위해 병원과 재활원에서 피눈물 나는 인고의 시간을 보냈던 호나우두는 또다시 '신'으로 가는 길에서 거대한 암초에 부딪혔다. 또다시, 인간의 슬개건은 신의 능력을 감당하지 못했다.

"호나우두는 이미 축구 선수로 이룰 것은 다 이룬 선수다. 그는 특별한 존재이며, 세계 축구 역사를 새로 썼다. 그가 한 골만 터트려도, 전 세계는 호나우두의 이름을 외칠 것이다." - 마리우 자갈루(전 브라질 대표팀 감독)

호나우두는 이미 전설이다. 하지만 악몽과 같은 모습으로 그의 경력이 끝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 프랑스와 지단에게 패해 국가 대표 경력을 마무리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의 발목을 잡아오던 슬개건 부상이 그의 프로 경력의 마지막이 된다는 것은 너무도 슬픈 일이다. 얼마의 시간이 걸리든, 그가 다시 돌아와 노란 유니폼을 입고, 밀란의 유니폼을 입고 환한 웃음 속의 골 뒤풀이로 행복한 마무리를 지을 수 있길 바란다. 모든 것을 다 이룬 그지만, 100번째 A매치까지 3경기 만이 남았고, 그가 유일하게 들지 못한 챔피언스리그 우승 트로피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다가온다.

모든 것은 다시, 그에게 달렸다.

프랑스 파리의 피티-사프트리에르 병원에서 호나우두의 수술은 집도한 제라르 새이앙 박사의 말은 가감이 없다. 희망적이지도 않고, 절망적이지도 않다. 그는 8년 전에도 호나우두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이끈 바 있다.

"두 시간에 걸친 수술이었고, 별다른 문제 없이 끝났다. 이번 부상은 지난번과 유사한 부상이다. 그래서 수술도 비슷한 방법으로 진행했다. 호나우두는 9개월 정도 재활에 매달려야 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그의 의지에 달려있다."

신은 우리이게 감당할 수 있을만큼의 시련만을 내린다고 했다. 성공만을 보고 달려왔던 호나우두의 축구 인생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만큼의 시련이 숨어 있었다. 그 모든 시련을 헤치고 정상의 자리에 올랐던 호나우두. '축구황제' 펠레는 36살까지, '축구신동' 마라도나은 37살 까지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호나우두는 아직 32살 생을 채 맞이하지 않았다. 그가 다시 일어나 희망의 증거가 되어주길 기대한다.

III. FACT FILE

이름: 호나우두 루이스 나자리우 지 리마(Ronaldo Luiz Nazario de Lima)

출생: 1976년 9월 22일, 히우 지 자네이루

클럽 경력: 상 크리스토방 - 크루제이루 - PSV 에인트호벤 - FC 바르셀로나 - 인터밀란 - 레알 마드리드 - AC 밀란-SC 코란티아스 (2009.1. 현재)

대회 경력:

 

1993 코파 브라질 우승

1994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우승, 월드컵 우승

1995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우승

1996 에리디비지 FA컵 우승,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수퍼컵 우승

1997 코파 아메리카 우승, UEFA Winners' Cup 우승, FIFA Confederations Cup 우승

1998 UEFA Super Cup 우승

1999 코파 아메리카 우승

2002 UEFA Super Cup 우승, 인터컨티넨털컵 우승, 월드컵 우승  

200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우승,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수퍼컵 우승

 

개인 경력:

 

1995 네덜란드 에레디비지 득점왕

1996 FIFA 올해의 선수

1997 FIFA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1998 세리에A 최우수 외국인 선수, UEFA 클럽 최우수 선수, 프랑스 월드컵 골든볼

2002 FIFA 올해의 선수, 발롱도르, 유럽 올해의 선수, 한일 월드컵 득점왕, UEFA 베스트11 (포워드부문)

2004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

 

IV. Goals

 

Season Club Country Level GP GS
2007-08 Milan ITA A 6 2
2006-07 Milan ITA A 14 7
2006-07 Real Madrid ESP A 7 1
2005-06 Real Madrid ESP A 23 14
2004-05 Real Madrid ESP A 34 21
2003-04 Real Madrid ESP A 32 24
2002-03 Real Madrid ESP A 31 23
2001-02 Inter Milan ITA A 10 7
2000-01 Inter Milan ITA A 0 0
1999-00 Inter Milan ITA A 7 3
1998-99 Inter Milan ITA A 19 14
1997-98 Inter Milan ITA A 32 25
1996-97 FC Barcelona ESP A 37 34
1995-96 PSV Eindhoven NED A 13 12
1994-95 PSV Eindhoven NED A 33 30
1994-94 Cruzeiro BRA A 14 12
1993-93 São Cristovao - - 0 0
Career Totals: 312 229

 

국가대표: 91경기 58골. 

클럽 커리어 통산 312 경기 229골.

 

 

 

중복인 거 알지만 재탕 (+업데이트) ㅇㅇ 진짜 볼 때마다 감격스럽다. 브라질 코란치아스에서 복귀가 임박했기 때문에 올림.

출처 : 훌리건 천국
글쓴이 : [철팸] 퍼기날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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