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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Allen Iverson (3) - 전사여, 당신의 심장은 그 어떤 이보다 크다.

나비넥타이 2012. 7. 27. 15:18

 
긴 글 읽어 주시는 분들께 다 감사드립니다. 

카페에는 다양한 읽을 거리가 있고, 많은 주제가 대두되는 토론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의 아니게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 있으니 우리 좀 더 서로를 배려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성숙한 문화가 유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A.I 글을 위해서 이것, 저것 많이 찾아보고는 시험이다 뭐다 이것, 저것 늦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번편은 Allen Iverson의 마지막 글이 되지 못 했습니다.

마지막 편은 AI와 Brown 감독과의 관계, 그의 코트 밖 실질적인 영향력과 그간 제기되었던 문제들에 대해 전해 드리겠습니다.

 

 아이버슨 1편, 전사는 전사하지 않는다, Only The strong survives, A.I (1) http://cafe.daum.net/ilovenba/7n/206092

 아이버슨 2편, 리그 최고의 전사, 그가 바로 답이다.-The Answer, 아이버슨 (2) http://cafe.daum.net/ilovenba/7n/206093

 

 

 

 


Ace of Ace


 

아이버슨은 태생이 마이클조던과 다른 Ace였다.

아이버슨이 조던보다 나았던 점이라면 드래프트 입문 순위가 더 높았다는 점이었다. (1996 draft no.1 pick)

 

 

(좌에서 우로) 빈스카터, 마이클조던, 앨런 아이버슨, 자말 매쉬번, 제이슨 키드 순...

 

 

허나 마이클조던은 수많은 공익활동과 리그 내외의 영향력으로 NBA 리그 당국의 위상을 드높임과 동시에 농구 자체의 전세계적인 홍보대사가 되어 버렸기에 야구와 하키, 미식축구 선수들(농구를 포함한 이 네가지는 미국의 major sports이다.)마저도 그를 우러러 보게 하였고, 이와 더불어 조던의 스폰서였던 Nike, Mcdonald's, Gatorade, AirJordan,Coca-Cola, ChevroletBall Park Franks, Rayovac, Wheaties, Hanes, Ferrari(페라리는 스폰서가 아니라 MJ가 차량을 구입할때 절반을 Ferrari측에서 부담하겠다고 하였음)의 주가 모두를 급진적으로(dramatically) 성장할 수 있었다.

Michael Jordan이라는 이름은 당시 걸프전이라는 전쟁을 통해서 나빠지는 미국의 이미지를 회복시킬 정도의 힘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Michael Jordan이었다.

(이는 그를 단순히 찬양하기 위한 멘트가 아니라 당시 여러 매체에서 정치적으로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에 당면하고 있던 미국이 국제사회가 그만큼 심도있게 참여하지 못 하게 만드는데 있어서 Michael Jordan이라는 인물을 잘 사용했다는 분석이 있었던만큼 어느 정도 정치적인 측면에서까지 Jordan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음을 간적접으로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

 

 

* 여담이지만 많은 정치후진국들에서 국민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3S 정책을 사용한 바 있다.

군부독재로 이루어 낸 국가, 60년대부터 80년대의 우리네 모습이기도 했지만 다수의 남미 국가나 공산국가에서 인권을 외치고, 민주주의를 외치려하는 시민들의 정치참여를 막기 위해 자극적인 주제를 사회적 이슈로 대두시키는 전형적인 정치후진국에서 사용하는 정책인데 이는 미디어에 3S(Sex, Screen, Sports)의 노출을 증가시켜 국민을 이쪽에 눈을 돌리게끔 하는 방법이다. 80년대 초반, 군사 쿠테타로 정권을 잡아 간선제로 당선되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프로야구를 출범시키는데 적극적이었던 점과 여러가지 국가차원에서 올림픽 개최를 위해 애썼던 것도 이러한 정치적 목적이 다분한 3S 정책의 일환이었다고들 한다.

 

- 별개로 90년대 초반 걸프전을 통해 자국의 많은 국군의 손실이 발생하고,

이라크 내의 무고한 시민들의 희생이 컸던 시기에

마이클 조던가 다각도로 미디어에 노출되었던 빈도가 급증했었음을 예로 들며

많은 정치학자들은 미국 정부가 Michael Jordan이라는 인물을

미국 국민들이 걸프전으로 너무 많은 관심을 보내는데 느꼈던 부담감과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입지가 부정적으로 미칠 것을 염려하여

마이클 조던의 "다이나믹함"을 미국의 이미지로 표출시키며 중화시켰다고 주장한다.

단순한 음모론자들의 주장으로 치부하기에 무리가 있던게

주장했던 인물들은 미국사회의 지극히도 객관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던 저명한 정치학자들이었다.

 

 

 

 

조던이 플레이할때 MJ의 미국과 더불어 세계에서의 영향력을 꺼내 보자면 그 가장 큰 예가 될 수 있는 것이 나이키의 비약적인 성장이라고 할 수 있다. 1976년 일본의 Onitsuka상사(Asics의 전신)를 통해 조깅화를 수입해 미국에 팔다가 우여곡절 끝에 창립했던 Nike의 Phil Knight회장의- "미국 정통 브랜드라는 이미지 하나만으로 시작했던 Nike"는 MJ를 통해 순식간에 Adidas와 Reebok을 밀어내고, 농구 코트에 가장 아름다운 브랜드는 Nike라는 이미지를 모두에게 심어 주었다. (당시 Air Jordan의 뒤에는 지금 retro되는 것들처럼 MJ의 포즈가 아닌 Nike와 swoosh 로고만이 대문짝만하게 찍혀 나왔다.)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부분이지만 당시 MJ의 인맥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정도라 동료들이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지 아무런 저명인사들(celebrity)을 다 불러낼 수 있었는데 그러한 카리스마 덕에 조던의 곁에는 정말 수많은 이들이 함께 하였다. MJ는 미식축구 선수들 개인에게조차도, MLB 선수들에게도 영광스런 인물이었다.

 

증거?

증거랄게 뭐 있나?

이 정도는 되야지!!   

 

 

 

 

본 투표는 몇해전 espn에서 실시한 "이 세대의 가장 위대한 (스포츠) 슈퍼스타"의 투표결과였다.

본 투표의 선정기준(criteria)에는

1) 미디어 장악력

2) field(그 분야) 장악력

3) 마케팅 가치

4) 국내외적인 영향력

5) name value (이름 자체의 가치)

이었는데

최후 1,2위는 골프신동 "그분" MJ와 Tiger Woods였다.

그리고, 최후의 1,2위를 가지고 그들은 다시 한번 설문을 했다.

"누가 더 위대한가"의 물음을 가지고 말이다.

 

 

마지막 투표 결과는 보시는 바와 같이 50개 주에서 총 156,258명의 투표로 진행되어 월등한 결과를 띈채 MJ가 뽑혔다.

미하엘 슈마허, 베이 브루스, 알리, 렌스 암스트롱 등 각 분야의 선수들 중 MJ가 월등한 투표로 1위에 링크된 부분은 공교롭게도 5개 부분 전부였다.

그렇다, 그는 A.I의 말처럼 농구라는 고유명사와 붙어 나오는 대명사와 같은 존재였다.

라이벌이 존재하지 않던 농구의 또 다른 명사..

 

 

 

하지만 그는 시간이 흘러 은퇴하였고, 지금은 최고의 드래프트 중에서도 최고로 남게 될지도 모를 드래프트의 1순위로 선발된 Allen Iverson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이 1순위 선수는 조막만한 키와 타고난 농구 실력과는 별개의 또 다른 능력이 있었는데 바로 그의 문화적 측면의 영향력이었다.

아시는 분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Allen Iverson은 Reebok이 Adidas로 인수될 기간을 2년반이나 연장한 인물이다.

(아니, 뭘 했길래 그런게 가능했냐고?)

 

 

 

Reebok의 Iverson을 통한 지속적인 투자자 유치와 아이버슨 신발의 판매가 없었더라면 Reebok은 그보다 훨씬 더 이른 시기에 왔을 재정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좀 더 헐값에 Adidas에 넘어 갔을 것이다. (그러한 열악한 환경에서도 자신 하나를 불살라 회사의 홍보에 도움이 된 점을 높이 인정하여 Adidas Ltd와 Reebok Int'l Limited는 아이버슨에게 무한한 감사 + 종신 브랜드 계약 상태에서 추가적으로 주지 않아도 될 인텐시브 보너스까지 지급하였다.)

 

이 classics를 농구화로 겸해서 판매하려 했던 리복의 마케팅 센스는 Air Force one 이후 꾸준히 변화를 추구하여 air Jordan과 airmax를 만들어 내었던 Nike에 비해서도, 뒤늦게라도 새로운 시도를 하며 더 나은 마케팅 수단을 마련하려 했던 Adidas에 비해도서 너무나 뒤쳐져 있었다.(way too far)

 

 

Reebok은 영국에서 1895년에 탄생한 전통 깊은 스포츠 브랜드였다.

영국쪽에서는 고풍스러운 문양의 빨강과 파랑의 조화는 유니온 잭(the union Jack)의 그것에서 따온 군주정치(monarchy)에 대한 충성을 나타낼만큼 역사 깊은 이 브랜드는 1990년에 접어 들면서 급변하는 스포츠 시장의 트랜드를 읽지 못하고 자신보다 30여년 뒤에 생긴 독일계 브랜드인 Adidas에게는 축구쪽을 잠식 당하였고, 농구 코트에 발을 들여 놓은지 얼마 되지 않아서는 훨씬 더 새로웠던 Nike에 점령 당하여서 발을 들일만한 major sports는 거의 없었는데 다행히도 1990년대에 Reebok은 NFL과 거액 장기 계약을 맺어 NFL에 유니폼과 장구류를 공급해주며 축구와, 야구 및 농구에는 발을 담구다 만 정도의 선수들에게 적당한 투자를 하였다.

 

 

리복은 그나마 NFL에서의 강력한 입지로 잠식한 미식축구화를 MJ를 통해 뜨던 최고의 브랜드였던 Air Jordan과 airmax를 필두로 새로운 신발의 혁신을 가져왔던 AJ의 모회사인 Nike에게마저 잠식 당하며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던 시기가 있는데 운좋게 Reebok은 NBA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사이즈와 상품성을 가지고 있던 1992년도 1번픽이었던 Shaquille O'Neal과의 계약과 리그의 태풍이었던 Shawn Kemp와의 연달은 계약을 통해서 숨통을 좀 틀 수 있었다.

← 이것이 shaq의 reebok signature shoe collection이다

* 흥미로운 점은 MJ의 첫번째 은퇴이후 나온 Air Jordan 9(MJ가 코트에서 한번도 신지 않은 첫 신발)은 Shaq가 리복과 헤어지면서 나이키가 샤크에게 신기려고 계약하려 했던 점이다. 아쉽게도 Shaq는 Starter로 계약했지만....

 

 당시 Reebok은 Insta pump라는(공기주입식 기구를 통해 발목지지 부분을 조여주는 신개념 기술)의 파격적인 성공을 장기적인 인기로 이어가지 못한채 새로운 기술이었던 hexa Light 기술을 재빠르게 꺼내어야 했는데 이 기술은 Shaquille O'Neal의 시그네쳐였던 Shaq1~4까지의 신발에 그대로 반영되었던 기술이었다.

 

 

 그나마 insta pump라는 기술은 Reebok에서 꾸준히 나오는 fury라는 신발에 도입되어 있으나 이마저도 마니아층에게만 형성된 매물이라 정상 가공 및 판매가 목표는 될 수 없는 계륵같은 기술이라고 해야할 듯 싶다. - 이와 비슷한 생산비 대비 판매 실적을 통한 이윤 창출이 어려운 신발로 Nike의 foamposite이 있단다.

Reebok의 Kolors series와 밑의 Kanye West가 신고 있는 nike airmax1은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지만 현재 각 제품의 인지도만으로도 Nike와 Reebok의 마케팅 센스 및 미래 예측 능력의 차이는 알 수 있게 된다.

 

 

(게다가 리복처럼 뒤늦게 농구용품에 뛰어 들었던 Adidas는 exin에서 좀 더 새롭고 인체공학적인 기술이라며 꺼내었던 Feet you wear 기술이 장착된 신발을 리그에 막 발을 내민 Kobe Bryant와 Antonie Walker에게 신겼고, 리복은 Shaq와 Kemp를 잃은채 자신들의 새로운 영웅이 되주길 바랬던 Allen Iverson의 첫 시그네쳐인 Question에 Hexa-light를 주입시켜 신겨 주었다.)

 

 

리복은 Allen Iverson이 코트에서 뛸때 신는 signature shoe 12가지를 제외하고도 캐쥬얼 슈즈로서의 아이버슨의 신발도 5개나 만드는등 아이버슨에 대해서는 지극 정성이었다. 게다가 투자할 것이 별로 없는 농구라고 떠들어 놓고서 훗날 NBA 유니폼 및 기구 계약에 열을 올리게 되는 메이져 브랜드로서 방침 없이 유행만 쫒는다는 비판마저도 서슴없이 들으면서도 NBA Love를 외친 지조없는 브랜드로 남게 되었다.

 

 

 

Reebok이 얼마나 A.I를 위해 움직여 왔는가에 대해서만 봐도 A.I의 영향력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지만 더욱 더 많은 것들이 A.I의 영향력의 위대함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신장을 심장으로 극복한 사나이.... 그의 공격 방법은???


 

 

Allen Iverson의 위대함을 좀 더 보려면 그의 기록에 대해서 살피면 좀 더 수월할 것이다.

옆에 있는 아이버슨의 프로필에서 나타난 것처럼 A.I의 포지션은 PG이자 SG이다.

공격 기회 창출 능력은(shoot made/ assist) 두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라는 점은 그의 스탯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의 통산 필드골 성공률 및 어시스트는 41.1%-6.2ass로 자신과 득점왕의 겨루어 왔던 여타 스윙맨(코비 브라이언트 45.3%-4.6ass, 트레이시 맥그래이디 43.7%-4.7ass, Lebron James 46.7%-6.6ass, 드웨인 웨이드 48.1%-6.7ass, 길버트 아레나스 42.7%-5.5ass etc 2009시즌까지의 자료)에 비해 전혀 뒤쳐지지 않는다.

 

 

게다가 그는 이미 지난 커리어동안 4번의 득점왕을 차지했다.

183cm의 신장과 81kg의 몸무게로 그는 리그에서 가장 훌륭한 공격 옵션 중 한명으로 남아왔다.

 해마다 NBA의 평균 사이즈(신장과 몸무게)는 계속 성장하여 작년에 드디어 202.9cm/100kg에 가까워 졌는데 이는 A.I가 맞부딪쳐야 할 상대의 사이즈가 커진 덕에 그의 공격루트가 더욱 더 많은 움직임을 요구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작년 NBA 선수 전체의 사이즈 치수와 경험치에 가장 가까운 선수인 Mr. Average에 뽐힌 선수는 Portland의 James Jones로 203cm에 99.8kg에 5년차였다.>

 

 

(펌프 페이크 이후의 점퍼는 장신의 스윙맨 - SG와 SF의 포지션을 보는 선수들의 공격 옵션이 될 수 있지, 183cm의 A.I에게는 해당사항이 거의 0인 공격이다.) 

 

A.I는 작은 신장때문에 불가피하게 상대방과 반발자국 이상의 거리를 둔 이후 던지는 풀업점퍼로 슛을 해야 하는데 이는 크로스오버 동작을 위한 드리블 모션이 타 스윙맨보다 더 필요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체력적으로 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가뜩이나 경기당 출전시간 수는 여타 선수들보다 많은 편인데... 코트 안에서의 움직임까지 많아야 한다니... 어지간한 선수는 견디기 힘들지 않을까?)

pump fake 이후의 점퍼 동작은 이 정도이다.

신장이 크고 탄력이 좋은 Kobe로서는 문제가 전혀 되지 않는 동작이지만 아이버슨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페넌트레이션 이후의 타이밍을 맞추기 힘든 플로터가 주 공격 기술이 되는데 펌프 페이크 이후의 점퍼와는 확연히 다른 많은 모션으로 체력 안배가 어려워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시즌 A.I는 42분에 가까운 출장시간을 소요했다.)

 

 

잘 보시라!!

위의 펌프 페이크 이후의 코비의 슛모션과 아래의 A.I의 슛팅 상황을...

Boston Celtics의 #12는 Ricky Davis로 아이버슨보다 18cm가 더 크기 때문에 아이버슨은 크로스를 두 세번 한 이후 좌측으로 돌아 와서 이 슛을 던졌다.

 대부분의 매치업은 이렇듯 아이버슨에게 작게는 10cm 크게는 20cm 정도의 디팬더가 붙는데 아이버슨은 이들보다 빠르고(speed속력 / quickness 순간 움직임) 그에 반해 그의 수비수는 아이버슨에 대한 가로수비가 힘들기 때문에 아이버슨의 작은 크로스 몇번에도 움찔 거리며 쓰러지거나 큰 공간이 열리게 된다.

 

 

이때 A.I는 바로 골밑으로 페넌트레이션을 하여 레이업을 하거나

Oops~

이럴 수 있으므로 골밑 요원이 같이 점프했을때 골밑 근처의 팀원에게 패스할 경우 easy bucket이 된다.

 

 

 

 


Inter-VIEW : What do you think about A.I?  앨런 아이버슨을 어떻게 생각하시죠?


 

 

Kobe Bryant(LAL) : 많은 사람들이 나와 A.I와의 관계가 형편없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오히려 잡동사니 매체(bunch of tabloids)들이 그렇게 만드는 경우가 더 많죠. 나는 A.I를 좋아해요.

왜냐하면 그는 내가 참여했던 드래프트의 1순위였고, 리그에 있는 최고의 scorer이자 가장 막기 힘든 선수니까요.

그는 내가 나 스스로를 더욱 더 강하게 만들게 만드는(made me want to make myself stronger) 선수입니다.

그리고, 코트 바깥에서는 내게 옷입는 영감을 주기도 하죠.

내게 Jerry가 농구의 존외심을 줬다면 MJ는 최고 선수가 되고픈 동기부여가 되었고, A.I는 나를 돌아보게 해주었습니다.

그는 현재 가장 선수들에게서 인정받는 선수입니다.

거친 그의 모습과는 다르게 그는 플레이 외적인 모습으로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 선수중 하나이거든요.

 

 

Tracy Mcgrady(HOU) : 내 농구경기는 Vince와의 기억이 많지만 연습할때 본 동영상에는 A.I가 더 많아요.

난 A.I와 매치업을 할 수 없어요. 우린 신장이 너무 다르죠. 그리고, 난 A.I가 무서워요.

 

 

Andre Iguodala(PHI) : 내 농구를 가르쳐준 사람이죠. 내겐 형같은 존재에요.

많은 선수들과 많은 어린 baller들에게 그는 훌륭한 교과서 같습니다. 그의 열정을 나는 배웁니다.

그가 Philly를 떠나서 나는 너무 안타깝지만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영원할겁니다.

Philly에서 내가 얼마나 더 훌륭한 career를 쌓던 내 앞에는 반드시 많은 인물들이 있을테고,

그 맨 앞에는 Dr. J와 A.I가 나올 것입니다.

 

 

Carmelo Anthony(DN) : 내게는 MJ는 은퇴한 영웅, A.I는 여전히 뛰는 영웅입니다.

그냥 내겐 그 자체로 훌륭한 선수이자 훌륭한 형제이죠.

LBJ도 훌륭하고, D.Wade도 훌륭하고, Kobe도 훌륭하고........

리그 코트 안에는 훌륭한 선수가 너무 많지만 나는 A.I를 따르고 싶습니다.

그와 만나게 되어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LBJ(CLE) : A.I는 참 재미있는 선수에요. 같은 코트에서 뛰는데 꼭 youtube를 보고 있는듯 하죠.

나는 그를 존경합니다. 가끔은 경기중 그가 너무 멋진 크로스오버를 하고 슛을 던져요.

그런데 놓치면 이 생각하죠.

"아.... 넣었어야 하는데...."

그 앞의 모션이 너무 멋있어서 꼭 슛을 넣었으면 하는 바람 밖에 없었습니다.

 

 

Kenyon Martin(DN) : 내가 J.Kidd와 뛰는 동안 그는 내 경기를 업그레이드 시켜줬고, A.I와 뛰는 동안 나는 내 경기를 업그레이드 시키고 싶었습니다. 그는 내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Mike Bibby(ATL) : 나뿐만 아니라 모든 아이버슨의 매치업은 경기전 똑같은 생각을 할거에요.

오늘은 어떻게 막아야 할까? 어떤 팀디팬스로 팀원들이 도와줄까? 팀원들에게 참 많이 기대어 봅니다.

킹스 시절 우리 경기는 환상적이었어요. 몇경기 전 LA를 12점인가? 차이로 꺾고, 우리 팀원들은 굉장히 기세가 좋았는데 그날밤 A.I에게 51점을 빼앗기고 졌어요.

 

 

Steve Nash(PHO) : 글쎄, 난 A.I와의 경기를 즐기지 못해요. 나같이 느린 템포로 상대경기를 조율하는 가드들에게 그 정도로 달려드는 선수들은 템포 생각을 할 수 없거든요. 난 아이버슨 앞에서 자신있게 가졌던 경기가 많이 없어요. 그게 참 놀라운 일이죠. 열심히 뛰었는데 돌아보면 자신있는 경기는 없네요.

 

 

 

(hoops, slam 포함 농구잡지와 인터넷 웹사이트에서 구한 인터뷰 번역글입니다.)

 

 

 

 

 

 

 

 

 

 

 

 

 


출처 : Welcome to Jamesized universe!!
글쓴이 : NewYorkerHAHA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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