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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허재이야기 (2)

나비넥타이 2009. 5. 25. 11:50
허재의 농구에 대한 글은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명문들이 남아 있고 앞으로도 훌륭한 글들이 전문가를 통해 쓰여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사실상 허재 농구의 심장부를 열심히 보지 못한 제가 써도 되나 의문스러운 부분입니다.

하지만 그런 대신 좀더 세밀한 부분, 전문가가 말하기 어려운 시시콜콜한 면을 봤던 대로 써보겠습니다.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즐거움으로 읽어주십시오.

-코드로 읽는 허재

허재의 농구에 대해 좀더 쉽게 쓰기 위해 그의 농구를 관통하는 키워드 몇 개를 먼저 살펴본다.

*균형(balance)
허재 농구의 핵심은 힘이다.

놀라운 순간스피드로 현란하게 내딛는 풋워크를 지탱하던 강인한 발목, 그의 농구인생 마지막의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포인트가드보다 오히려 한탬포 빨랐던 패스웍을 만들어낸 튼튼한 어깨, 한 손으로도 코트 끝까지 흔들림 없는 패스를 보낼 수 있는 팔목, 좀 부정확하다 싶어도 어김없이 골인되는 묵직한 3점슛(손을 떠난 볼에도 힘이 들어갈 수 있다는 걸 알려준 첫 선수다;;), 수비수의 몸과 맞부딪쳐도 슛을 성공시키고 바스켓카운트까지 얻어내는 자신감 넘치는 플레이...이 모든 게 힘을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은 그 힘이 균형 잡혀 있다는 점이다.

내가 허재의 플레이 처음 반한 순간은 어느 게임에서인가 허재가 수비수가 3명 포진해 있는 골밑 엔드라인을 아슬아슬하게 치고 들어가 골대를 스치며 몸의 방향을 전환해 더블클러치 레이백슛을 성공시켰을 때다.(어쩌면 리치백슛인지도 모른다. 오른손인지 왼손인지까지 기억하기는 어려우니까-_-;)

당시 국내 선수들 기술이 비교적 단조로웠지만 그렇다고 백슛이 신기할 정도의 슛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 그 슛은 아직까지도 기억에서 선명히 리플레이 될 정도로 아름다웠다. 물론 NBA중계에서는 별별 현란한 슛을 다 봤지만 그건 아무래도 TV 브라운관을 통한 것이고 코트에서 실제로 보는 감격과는 틀리다.

당시 허재는 30을 넘겼고 젊은 선수들 중 허재보다 더 점프력 좋고 운동능력 좋은 선수가 없지 않았다. 물론 그후로도 수많은 뛰어난 운동능력을 갖춘 테크니션 용병들을 봐왔지만 그만한 감동을 남겨준 아름다운 슛은 드물었던 것 같다.

점프력에서건 근육의 탄력이나 유연성에서건 최고라 할 수 없었지만 허재의 모든 동작은 끊김없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고 공중에서 바디발란스는 가히 국내 선수 중 최고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그 슛 하나로도 허재 농구의 많은 부분이 설명될 수 있다. 수비수가 3명이나 포진해 있는 엔드라인을 라인아웃이 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치고 들어가는 대담성, 수비수의 체킹에 흔들리지 않는 파워, 어려운 자세에서 슛을 성공시키는 집중력, 그리고 그 모든 동작을 완벽하게 끝마칠 수 있었던 바디발란스.

허재는 국내농구선수로는 드물게 상체와 하체가 고루 발달했다. 지금이야 웨이트트레이닝에 대한 과학적 이론과 기법이 정착되어 선수들 몸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허재가 뛰기 시작했던 때를 생각해보면 놀랄만한 선수가 아닐 수 없다.

사실은 지금도 농구선수 중 허재 정도로 균형 있는 몸을 갖춘 선수를 찾기 어렵다. 대개는 하반신이 좀더 발달했다던가 하고 전신이 골고루 단련된 선수가 드물다.

풋워크, 드리블, 페이크, 패스, 슛, 농구의 기본기에서 허재는 테크닉적 완숙도도 훌륭하지만 놀랄만큼 균형 잡힌 몸에서 나오는 파워를 기본으로 안정감 있는 기술을 선보인다는 점에서 더욱 다른 선수와 차별화 된다.


△ 풋워크
허재의 스탭은 농구선수로 좀 특별하지 않나 싶다. 이론적으로 설명하기엔 내 지식이 짧지만 그의 풋워크는 농구선수의 것이라기 보다는 흡사 권투선수를 연상시킨다. 권투에서 "풋워크는 수비의 기술이 아니라 공격의 기술이다"란 말이 있다.

그의 풋워크는 스탭의 낭비가 없고 상대 수비수에게 부담감을 안겨줄 만큼 공격적인 느낌이다. 특히 페네트레이션 때 스탭을 보고 있으면 사실 그가 그토록 처절하게 반칙당했던 이유 중 하나가 그의 풋워크에도 있지 않나 생각들 때도 있다.

상대수비수가 느꼈던 부담감이나 공포가 적의로 변환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가 싶다. 물론 그걸로 용서될 문제는 아니겠지만...

나중에 허재 선수의 아버님이 권투선수이셨고 허재 역시 어린 시절 권투를 배웠다는 기사를 읽고 꽤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보여주는 뛰어난 바디 발란스는 안정감 있는 풋워크에서 출발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드리블 능력과 페이크 능력 밑바탕에도 풋워크가 있다.

특히 체인지오브페이스나 체인지오브디렉션, 드리블 페이크 때 순간적으로 수비수를 떼어내고 상대의 반칙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기본에 안정감 있는 풋워크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 드리블
허재의 드리블은 여러 차례 다루어졌고 또 앞으로도 여러 차례 다루어질 거라 여겨진다. 허재에 관해 "패스는 강동희가 최고, 슛은 이충희가 최고... 슛, 어시스트, 리바운드 등 모두 최고는 아니었지만 이 3가지 모두 거의 최고에 근접한 능력을 갖추었다"란 평이 있다.

그렇다면 허재가 최고인 부분이 무엇일까? 그건 드리블이 아닌가 싶다.

낮고 안정감 있는 자세로 엇박자로 치고 들어가는 현란한 드리블은 다른 가드들이 감히 뺏으려 엄두내기 어렵다. 허재의 드리블은 한눈에도 묵직하다는 느낌이 있는데 그렇다고 힘이 과하게 들어간 드리블이 아니다.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굉장히 무거운 드리블을 하는 김승기 선수를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지금은 매우 낮게 평가되는 선수지만 전성기에는 이상민과 비견될 정도였고 특히 드리블 능력과 안정감은 상위로 평가된다.)

김승기 선수가 드리블 치고 들어갈 때는 다른 선수들이 뺏기 어렵지만 드리블에서 패스나 슛으로 급격하고 유연한 동작전환이 어렵다. 그에 반해 허재의 드리블은 어느 순간이든 그 상태에서 패스나 슛으로 단 한 동작에 전환된다.

재미있는 것은 허재의 드리블은 현란해 보이는 것과는 달리 잔재주가 적다. 내가 허재의 과시욕을 가볍게 평가해서가 아니라(<-안티 맞다.^^;) 허재 본인이 불필요한 동작을 싫어한다.

허재의 농구는 절약의 농구다. 드리블에서건 슛에서건 패스에서건 군더더기를 넣지 않는다. 오히려 줄일 수 있는 동작은 과감하게 줄이는 "Simple is Best!"를 몸으로 실천하는 농구다.


△ 페이크 Ⅰ
허재의 페이크는 오히려 용병이 들어오고 더 돋보이지 않았나 싶다. 상대 선수가 운동능력이 뛰어나고 좋은 선수일수록 더 잘 먹힌 것 같다.

허재는 드리블페이크, 아이페이크, 숄더페이크, 풋페이크 등 2~3개의 페이크가 한꺼번에 쓰는 경우가 많은데 특히 풋페이크와 아이페이크, 숄더페이크가 각기 다른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은 절품이다.

페이크에 과장이 없고 빨리 들어가기 때문에 상대 수비수들이 번번이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실 역대 국내 선수 중 이 부분에서도 최고가 아닌가 싶다.

페이크 기술이 쇠퇴한 것은 아닌데 아쉽게도 발이 느려져 이번 시즌에는 그의 페이크를 그렇게 많이 볼 수 없었지만 타이밍만 잘 맞추면 여전히 보는 이들에게 톡톡한 즐거움을 주었다.


△ 패스
허재의 패스는 "정확도"와 "빠른 패스타이밍"이 가장 큰 장점이다. 패스의 정확도는 볼을 받은 리시버가 바로 다음 동작(슛)으로 들어갈 수 있게 해주고 "빠른 타이밍"은 수비수를 견제를 떨어내게 해줘 그의 패스는 종종 어시스트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게임운영의 책임을 지지 않았던 2002시즌까지 좀더 그런 화려한 패스를 볼 수 있었다. PG역할을 맡게 된 지난 2시즌 허재의 패스는 좀더 PG 역할에 맞도록 진화했다.

허재가 단번에 포인트가드로 포지션 변환에 성공한 것은 넓은 코트비전과 패싱력을 기본적으로 갖추었기 때문이다. 뭐 기능 면만 놓고 본다면 허재는 한국 최고의 포인트가드로 자질을 갖추었다. 그러나 인내력이 부족한 점(다른 선수들이 안 풀리면 참고 차근히 풀어볼 생각보다 자신이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 볼 소유욕이 지나치게 강한 점, 게임의 주도권을 과하게 잡고 있는 면 등이 큰 감정 요인이다.

하지만 허재를 퓨어 PG번의 모범이라고 할 순 없어도 그 스스로 자신의 플레이를 많이 변화시켜 충분히 팀을 잘 이끌어냈다.

순간순간 화려함은 줄어들었지만 좀더 창의적이고 플레이 연결성이 높은 패스를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예전에 하던 패스는 완성된 요리라면 PG역할을 맡고 보여준 패스는 직접 끓여먹을 수 있도록 내놓는 전골에 비할 수 있을까.





※ 허코치님 플레이는 절약의 미덕을 갖추었는데 제 글은 도무지 그런 미덕을 못 갖추어 더 이상 길어졌다면 웹상에서 읽기 지루할 것 같아 여기서 끊습니다. 근일 또 뒤를 잇겠습니다. 필요없어 라고 하셔도...후후;;
출처 : I Love NBA
글쓴이 : 무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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