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t Hill

[스크랩] About 그랜트 힐

나비넥타이 2010. 2. 12. 15:54

 

 

*내용이 많기 때문에 편의상 존칭어를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어린시절부터 컴플렉스가 하나 있었다.

아주 부유한 환경에서 자란 바로 흑인 아닌 흑인이라는 것.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백인들로 부터는 인정받을 수 없었고, 같은 흑인들로부터는 손가락질 받는 위치였다.

청소년시절 BMW를 선물받고도 타지 않고 반항했으며, 아버지가 자신의 학교에 강연하러 올 경우 핑계를 대서 양호실에 있었다는 일화도 있다.

 

어쨋건 힐은 명문 사립대학인 듀크대학에 진학하고, 그는 듀크대학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선수로 꼽히는 선수가 되었다.

대학1,2학년때 팀은 그 어렵다는 NCAA토너먼트에 연속으로 정상에 올랐고 3학년때는 최고 수비상, 4학년때는 베스트5와 지역MVP를 수상했고, 득점, 어시스트 스틸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게 된다.

 

 

<어린시절에도 살인미소를 자랑했군요^^>

 

듀크대학을 졸업 후, 1994년 드래프트에서 디트로이트 피스톤즈에 1라운드 3순위로 뽑히게 된다. 흑인아닌 흑인이였던 그가 하필이면 디트로이트에 뽑히다니....이건 나중에 설명하도록 하고, 하여간 그는 루키시절부터 엄청난 돌풍을 불러일으킨다.

6피트 8(약203cm)의 키의 이상적인 신체조건과 뛰어난 운동능력을 가진 포워드로서 3점슛을 제외하고는 자신의 포지션에서 보여줄 것은 다 보여줬다.

94~95시즌 70게임 출장해서 평균 19.9득점, 6.4리바운드, 5어시스트, 1.7스틸, 0.89블락 필드골 성공률 47.7%

 

이런 엄청난 스탯을 기록하며 제이슨키드와 함께 신인왕을 공동수상하게 된다.

그리고 항상 밝은 표정과 매너로 '코트의 신사'란 별명을 얻었고, 디트로이트 6년동안 매년 올스타에 뽑혔고, 그는 루키최초로 수많은 스타들을 제치고 팬투표 1위에 등극한다.

그리고 96년 올림픽의 드림팀멤버로 출전하여 금메달도 목에 걸게 된다.

그는 5시즌동안 매년 기록이 향상되었다.

그는 매경기 20득점, 8리바운드, 6어시스트, 1스틸 필드골 성공률 50%이상을 기록해 줄 수 있게 되었고 많은 트러플더블을 기록할 정도로 성장하게 된다.

 

그의 패네트레이션은 당시는 물론이고 역대로 봐서도 최고로 평가받는다.

일단 엄청난 퍼스트스텝을 가졌으며, 정말 훌륭한 밸런스를 유지했다.

강하게 파고들기도 하지만 어떨땐 부드럽게 상대수비를 제쳤다.

3점슛능력이 없고 거기다 자유투마저 뛰어나지 못했던 그가 평균 20이넘는 득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페네트레이션 덕분이다.

페네트레이션을 한 후 뛰어난 운동신경을 바탕으로 레이업, 덩크, 점퍼등으로 마무리했다.

적어도 그는 3점슛라인안에서는 어디서든지 득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녔었다.

시카고와의 경기에서는 조던과 피펜이 1:1로 계속 막기 버거워서 서로 번갈아 가면서 막는 모습까지 보일 정도로 대단히 위력적이었다.

그런 페네트레이션을 더 위력적으로 만들어 준 건, 바로 그의 어시스트 능력이다.

아무리 1:1이 뛰어나다고 해도 협력수비로 어느정도 제어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에게 수비가 더 붙을 경우, 무리하지 않고 영리하게 동료들에게 패스를 줬다.

그 패스는 거의 웬만한 포인트가드 수준의 패스였다.

그리고 그는 수비역시 뛰어났다. 통산 1.52스틸을 기록할 만큼 뛰어난 스틸러였으며,

블락역시 스몰포워드로서는 준수한 수치를 기록했으며, 특히 골밑에서는 상대방 선수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느끼게 해줄 정도였다.

상대방 에이스의 수비는 항상 그의 몫이였다. 정말 그는 감독들이 선호하는 팔방미인형의 선수였다. 단지 흉내만 내는 어리숙한 올라운더 플레이어가 아니라, 진정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최고의 수비수였던 무톰보를 앞에 두고 덩크하는 장면>

 

 

<드림팀유니폼을 입고>

 

하지만 이런 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상하게도 홈보다 다른지역에서 인정받는 스타였다.

이 이유는 디트로이트의 지역적 특성에 기인한다.

 

디트로이트는 전통적인 블루워커 도시, 즉 흑인팬이 많은 도시이다. 80년대 시절의 배드보이즈, 지금의 하드워커 빅벤같은 선수들이 이 도시에 어울리는 선수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도시의 사람들에게 명문사립출신에, 고급영어를 구사하는 힐은 자신들의 스타로 받아들여지기 힘들었다. 이런 팬들의 태도와 팀성적의 부진은 그를 힘들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항상 승리자였던 그는 정말 열심히 플레이 했지만, 디트로이트는 그의 원맨팀일 뿐이였고 간신히 플레이오프에 진출해도 항상 1라운드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그런 그는 지역언론과 팀동료들에게까지 터프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강하지 못한 온실속의 화초란 말도 들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밝은 표정을 가지고 팀과 팬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한다. 자신의 단점이었던 외곽슛을 보강하기 위해 개인슈팅코치까지 고용해서 열심히 훈련을 했다.

그리고 이런 그의 노력들이 빛을 보는듯 99~00시즌 달라진 모습을 보여준다. 98~99시즌 50경기동안 14개 던져서 하나도 성공시키지 못해 0%를 기록하며 그를 창피하게 했던 삼점슛 성공률이 34.7%까지 뛰어오른것.

비록 100개 정도를 던져서 기록한 것이긴 했지만 이시즌동안 성공한 34개의 삼점슛이 앞의 5시즌에 성공시킨 갯수보다 많을 정도로 대단한 발전이었다.

자유투 성공률도 80%에 가까울정도로 향상되었다.

외곽슛과 자유투능력이 향상되자 그의 득점력도 훨씬 탄력을 받아 커리어 하이인 평균 25.8득점을 기록한다.

이런 기록으로만 보면 정말 좋은 시즌일 수도 있지만, 반면에 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준 시즌이기도 하다.

 

사실 그는 시즌 후반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발목통증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게된다. 진찰을 한 병원에서는 운동을 중지하라고 통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무시하고 경기에 나선다.

자신에 대한 평가를 바꾸기 위해. 지역언론과 팬들의 비아냥거림을 없애기 위해.....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자신의 팀에게 2라운드진출이라는 작별선물을 주기위한 것일지도...

하지만 결국 모닝과 팀하더웨이가 버티고 있던 마이애미란 벽을 넘지못하고 탈락하고 만다.

어차피 시즌이 끝난 후 올랜도로 가게 되고 그가 전성기를 구가할 시점이었다는것을 생각해보면 좀더 신중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든다.

 

 

<힐의 덕을 많이 본 필라신발. 신발의 허접함때문에 부상당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죠^^>

 

그는 다음시즌 트레이드되고 오프시즌중이던 4월 왼발목 복사뼈를 처음으로 수술한다.

결국 올랜도의 첫시즌은 달랑 4경기만 뛰고 마감한다. 그리고 다시 2001년1월 두번째 수술을 받게 된다.

 

하지만 01~02시즌 역시 14경기만 뛰고 시즌 마감. 다시 수술을 받게 된다. 세번의 수술과 재활로 2년을 보내고, 힐은 다시 회복된 발목으로 02~03 시즌을 맞게 된다.

그는 몇경기동안 재기에 성공한듯 보였다. 첫경기에서 33분을 뛰며 18득점을 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고, 세번째 경기에서는 33분을뛰며 팀내 최다득점인 27점을 올리기도 했다.

매직의 팬들은 정말 열광했고, 그만큼 그의 데뷔는 성공적이였다.

언론에서도 난리가 났었고 당시 주가를 올리던 맥그레디와의 콤비플레이에 많은 사람들이 기대를 하였다.

 

그러나 시즌이 계속되면서 또 발목의 상태가 나빠졌고, 29게임만을 뛴후 그는 다시 의료진의 진찰결과에 따라 시즌아웃을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왼쪽발목에 4번째 수술을 받는다. 이번 수술은 저번보다 훨씬 큰 수술이였다.

예전에 그랜트 힐의 발목 뼈에 박아둔 세개의 나사를 모두 제거하고, 골절된 뼈를 강화시키는 철판을 고정시키는 수술이었다. 더불어, 새로운 뼈 생성을 돕는 유전자공학 물질을 발못에 투여했다. 또, 왼다리를 똑바로 고정할 수 있도록 발목 골절술도 받았다.

힐은 완벽한 복귀를 꿈꾸며 03~04시즌을 통째로 날리기로 결정한다.

 

그는 이런 힘겨운 재활기간동안 건강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사회복지쪽으로도 많은 역활을 하였다.

그는 그가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모교인 듀크대학과 아동학대반대 기금에 기부를 했고, 아버지 이름으로 듀크 대학에 장학재단을 설립. 역시 자신의 이름으로 디트로이트와 지금의 올랜도에 장학재단을 설립했다.

이런 활동등으로 1999년 특별 세계 올림픽에서 부의장으로 봉사하기도 했고, 2001년에 헬렌 디보스 표창장을 받았다.

 

그는 이제 웬만한 선수였다면 포기했을 만큼 지옥같은 재활과정을 마쳤다.

그는 최근 '이제 그 지겨운 아이스팩은 가지고 다니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할 정도로 자신감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트레이닝 캠프에 참여했고, 최근 시범경기 첫 경기도 별 기록은 남기지 못했지만 10분넘도록 뛰었다.

이제 정말로 돌아오는 것일까? 코트의 안과밖으로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그랜트힐.... 나 역시 정말 좋아하고 그리워하고 있는 선수다.

이제 그의 경기를 다시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가슴떨린다. 오랜시간동안 기다린 올랜도매직은 지금 나름대로 탄탄한 전력을 갖추고 그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가 예전처럼 우리를 빠져들게 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와 올랜도와 함께 비상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파이팅 그랜트 힐! 그의 매직같은 플레이에 다시 빠져보고 싶다.

 

 

written by clavis-방랑좀비

시즌전에 제가 스포츠서울게시판에 올렸던 것인데 여기에도 옮겨봅니다.

결국 돌아와 주었네요... 너무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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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I Love NBA
글쓴이 : 방랑좀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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