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fernee Hardaway

[스크랩] 페니 하더웨이를 추억하며 1부 "그의 불꽃 같았던 전성기"

나비넥타이 2016. 12. 30. 00:25

*최근 제가 쓴 글들을 가져가서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행동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제가 작성한 모든 글들의 저작권은 제게 있습니다. 글을 무단으로 퍼가시거나, 무단 인용 하시거나, 자신이 쓴 것처럼 사용하실 경우 '법적 책임'을 물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글도 엄연한 '개인의 재산권'입니다.


지금 이 글을 보고 계신 분들이 만약 저와 비슷한 연배라면! 또 90년대에 적어도 중고등학생 이상의 연령대로 그 시절을 보낸 분들이라면! 아마도 공통된 몇명의 Hero들을 가슴에 품고 있을 겁니다.



*사진출처: WWE

우선 WWF(현 WWE)의 헐크 호건과 얼티밋 워리어


*사진출처: http://www.klce.com

그리고 마이클 잭슨과 


*사진출처: http://www.hankookilbo.com

우리나라의 서태지와 아이들


*사진출처: http://www.rollingstone.com

락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겐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


*사진출처: http://www.dailymail.co.uk

축구 팬들에겐 브라질의 호나우도


*사진출처: http://bitcoints.com

권투 팬들에겐 마이크 타이슨


*사진출처: http://www.cirrusinsight.com

그리고 무엇보다 NBA의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그들입니다. 물론 이들 외에도 각자 다른 영역에서 자신들만의 Hero들이 있었겠지만, 이들은 스포츠 및 음악 등 각 분야에서 소위 '가장 최고인' Hero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최고의' Hero들 외에도 우리 가슴 속에 진하게 남아 있는 '또 다른 스타일'의 Hero 한 명이 있었습니다.


*사진출처: http:// seriouslycanon.wordpress.com

바로 앤퍼니 하더웨이


만약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의 연령대가 낮다면, 이 선수에 대해 잘 모르시거나 그냥 이름 정도만 얼핏 들어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듣자하니 전성기도 짧았다던데, 왜 아직까지도 90년대 학생 시절을 보냈다는 '노땅'들은 계속 이 선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 뭐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도 이해는 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조금이나마 풀어 드리고자 합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의 열성 팬인 제 입장에서 쓰는 매우 주관적인(!) 이야기들이라는 사실 정도는 깔아두고 시작하고 싶군요. 추억은 미화되기 마련이니까요. 




할머니가 지어주신 '페니'라는 멋진 별명을 가진, 앤퍼니 디온 하더웨이는 1971년 7월 18일, 미국 테네시 멤피스에서 태어났습니다. Treadwell 고등학교에서 어마어마한 성적을 올리며 활약한 페니 하더웨이는 멤피스 대학교로 진학해 20.0득점 7.7리바운드 5.9어시스트라는 좋은 성적을 올리며 주목 받았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theshadowleague.com

이후 하더웨이는 1993년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번 픽으로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즈에게 지명됐습니다. 하지만 드래프트 당일.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즈는 대학 최고 슈퍼스타였던 크리스 웨버를 얻기 위해, 3번 픽으로 지명한 페니 하더웨이와 1996. 1998. 2000년 무려 세 장의 1라운드 픽을 올랜도로 넘기고 크리스 웨버를 받아왔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nba.com

사실 올랜도 매직은 1992년 드래프트에서도 1라운드 1번픽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올랜도는 당시 역사상 가장 파워풀한 센터라는 '공룡' 샤킬 오닐을 지명해 전년도 보다 높은 성적을 기록했지만. 로터리 픽 추첨에서 정말 극도로 낮은 확률로 '로또(!)'를 터트리며 또 다시 1라운드 1번픽을 쥐게된 것입니다. 팀 명 그대로 '매직' 그 자체였습니다.


*사진출처: http://allsportseverything.com

그래서 올랜도 팬들은 대학 최고의 스타, 크리스 웨버를 지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광하고 있었습니다. 웨버는 당시 대학에서 Fab5라는 명성을 얻으며, 실력으로도, 외모로도, 또 새로운 패션의 아이콘으로도 유명세를 떨치던 선수였습니다. (지금 유니폼을 힙합 스타일로 크게 입는 것은 조던이나 아이버슨이 아닌 웨버와 Fab5의 영향 때문입니다.)


올랜도 팬들은 당연히 샤킬 오닐과 웨버의 막강한 트윈 타워를 기대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올랜도는 검증된 '빅맨' 크리스 웨버를 일개 백코트 자원과 바꾸는 '위험한 거래'를 한 것입니다. 


올랜도 팬들은 이 트레이드에 대해 '바보같은 짓'이라며 극렬하게 분노했습니다. 올랜도 열성 팬들은 페니에게도 야유와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실력과 외모, 상품성 모든 걸 다 가진 대학 최고의 슈퍼스타 크리스 웨버를 저런 깡마른 포인트 가드와 맞바꾸다니!" 페니 하더웨이의 시작은 이렇게 순탄치 못했던 겁니다.


하지만 올랜도 구단의 생각은 확고했습니다. "포스트 플레이어는 이미 오닐로 충분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오닐에게 엔트리 패스를 넣어줄 수 있고, 오닐에게 몰리는 수비 부담을 분산시켜줄 수 있는 포인트 가드다." 


그렇게 시즌이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올랜도 구단의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gettyimages.in

페니 하더웨이는 데뷔 시즌 스캇 스카일즈라는 포인트 가드 때문에 붙박이 포인트 가드로는 출전하지 못했고, 포인트 가드와 슈팅 가드를 경우에 따라 오가며 플레이해야 했는데, 데뷔 경기에서 12득점 8리바운드 8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매직 존슨의 후계자가 될 자질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어 페니는 루키 올스타전에 출전. MVP까지 수상했고, 데뷔 시즌 82경기에 모두 출전해 16득점 5.4리바운드 6.6어시스트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필드골 성공률도 가드로서는 높은 46.6%를 기록했고, 평균 36.8분 동안 경기에 출전해 팀이 원하는대로 포인트 가드 부터 슈팅 가드, 또 스몰 포워드에 이르기까지 올어라운드한 모습을 선보였습니다.


*사진출처: http://sneakernews.com

페니의 진짜 전성기는 2년차 때 부터 시작이었습니다. 페니는 소모포어 시즌에 77경기에 선발 출장해 20.9득점 4.4리바운드 7.2어시스트에 무려 51.2%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했습니다. 포인트 가드가 51.2%의 필드골 성공률을 기록하다니... 


페니 하더웨이는 포인트 가드이지만, 키가 무려 2미터 1센티나 되는 선수였습니다. 대부분의 포인트 가드들이 180센티 대이며, 키가 커도 190센티 초반대라는 걸 생각해 본다면, 하더웨이는 대부분의 매치업 상대들에 비해 10센티 이상이나 컸다는 소리입니다. 게다가 하더웨이는 깡마른 체구에 비해 포스트 플레이에 매우 능통한 선수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큰 키를 결코 낭비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럭비공이 튀겨 오르듯 통통 튀기며 예측 불가능하게 좌우로 중심을 흔들며 밀고 들어가는 그의 특유의 포스트업은 상대 가드들을 '멘붕'에 빠뜨렸고, 페니의 포스트 플레이를 막기 위해 상대 빅맨까지 도움 수비를 와야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올랜도 매직에는 누가 있죠? 


*사진출처: http://goethe.areavoices.com

그렇습니다. NBA 역사상 가장 힘이 넘치는 센터 샤킬 오닐이 있었죠. 상대 빅맨이 페니의 포스트 플레이를 막으려고 달려오면 페니는 여지 없이 오닐에게 '식도 패스'를 날렸습니다. 그리고 샤크는 그렇게 골대를 부숴버렸습니다.


2년차 때 부터 페니 하더웨이는 도저히 막을 수 없는 선수였습니다. 페니는 NBA에서 손꼽히는 운동 능력을 가진 선수였습니다. 심지어 이 시기 1차 복귀를 선언한 마이클 조던 조차도 "운동 능력이 예전 같나?"라는 기자의 질문에 "요즘 페니 하더웨이 같은 선수들 보다는 떨어진다"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페니의 퍼스트 스텝은 NBA 최고 수준이었습니다. 당시 올랜도 매직의 공격 패턴은 이러했습니다. 안정적인 드리블로 페니가 공을 가지고 하프 코트를 넘어 옵니다. 그리고는 양 사이드에서 대기하고 있는 닉 앤더슨이나 데니스 스캇에게 볼을 넘기고 페니는 크게 돌아 약속된 패턴 플레이를 시행 합니다. 스윙맨들은 기회를 봐서 포스트에 있는 오닐에게 볼을 투입하거나 다시 볼을 돌리며 기회를 엿봅니다. 


코트를 크게 돌아 나온 페니가 다시 볼을 잡으면. 페니는 우선 포스트업을 시도하려는 오닐에게 안정적인 엔트리 패스를 넣어 줍니다. 이때 오닐에게 함부로 더블팀을 갈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올랜도에는 양궁부대라고 일컬을 수 있는 당시 최고의 3점슈터들이었던 닉 앤더슨과 데니스 스캇이 3점 라인에 서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불스에서 이적해온 호레이스 그랜트도 미드 레인지 영역에서 매우 정확한 중거리 슛을 날릴 수 있는 선수였습니다.


게다가 무엇보다 페니가 있었습니다. (설상가상!) 엔트리 패스를 넣어주던 페니는 자신을 수비하던 선수가 오닐에게 더블 팀을 가면 곧바로 어마어마한 속도로 골대를 향해 컷인을 시도했고, 오닐이 페니에게 볼을 넘기면 바로 페니는 멋진 덩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렇다고 오닐을 1:1로 막으면? 오닐에게 인유어 페이스 덩크를 얻어 맞고 병원으로 실려 가든지, 아니면 계속 파울로 끊다가 파울 트러블로 벤치로 실려 가든지 해야 하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이도 저도 안 되면 페니는 어마어마하게 빨랐던 퍼스트 스텝과 긴 리치를 이용해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1:1 공격으로 득점을 해냈습니다. 


클러치 상황에서도 올랜도 매직은 강했습니다. 클러치 상황에서는 자유투가 약한 오닐 대신. 페니 하더웨이가 주로 공격을 이끌었는데, 페니는 사실 슛이 그리 좋지 못한 선수 치고는 클러치 상황에서도 몹시도 위협적인 선수였습니다. 페니는 어마어마한 퍼스트 스텝과 순간 속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솔레이션 상황에서 약간만 방심하면, 페니의 간결한 2스텝 돌파에 이은 골대를 향한 초스피드 러쉬를 볼 수 있었습니다. 이후 이어지는 페니의 화려한 더블 클러치 쇼타임이나 덩크슛도 볼 수 있었고요. 그리고 이걸 막으려 도움 수비수가 달려오면, 페니는 제 2의 매직 존슨이라는 별명을 유감없이 느끼게 해주는 킬링 패스들을 코트 곳곳으로 날려 주었습니다.


*사진출처: 슬램덩크 만화

이렇듯 당시의 페니는 말 그대로 'Ace'였습니다. 평소에는 슛 시도를 많이 하지 않고, 팀 플레이 위주의 패스 플레이에 주력하는 선수였지만, 중요한 시간이 오면 여지없이 주인공 자리에 올라가 자신이 경기를 끝내는 그런 선수였습니다. 만화 슬램덩크의 정우성 모델이 페니 하더웨이라는 건 이미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지요. 


NBA는 그런 센세이션한 2년차 선수에게 무려 '퍼스팀 가드' 자리를 내주었고, 페니는 돌아온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까지 무너뜨리며(!) 데뷔 2년 만에 NBA 파이널에 진출했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nba.com

정말 말 그대로 페니와 오닐. 그리고 그들의 올랜도 매직은 파죽지세였고. 그들은 새시대의 압둘자바와 매직이 될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매직은 휴스턴에게 4-0 스윕으로 패배했고. 준우승에 만족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올라주원에게 농락 당하던 오닐에 비해, 하더웨이는 고작 2년차 애송이임에도 불구하고, 파이널에서 조차도 여전히 50%의 필드골과 함께 25.5득점 4.8리바운드 8.0어시스트라는 놀라운 성적을 올리며 주목 받았습니다. 


*사진출처: http://www.pinterest.com

그런 페니의 3년차 시즌은 더욱 화려했습니다. 특히 샤킬 오닐이 부상으로 빠진 한 달 동안 페니는 27.0득점 5.8리바운드 6.5어시스트를 기록하며(51.0% 필드골!) 팀을 13승 2패, 동부 지구 최고 순위로 올려 놓으며. 홀로 마이클 조던 놀이를 했습니다. 이 당시 올랜도 팬들 조차도 "굳이 오닐이 필요한가?"라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 다했습니다.


이 당시 페니의 인기는 정말 하늘을 찔렀습니다. 다음은 페니에 대한 코멘트들입니다. 


"페니 하더웨이를 보는 것은 마치 내 자신을 거울로 보고 있는 것과도 같다." - 매직 존슨


"그는 흠잡을대 없는 플레이어다." - 래리 버드


"그의 능력은 무한대여서 그의 미래를 우리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 케빈 존슨


"그는 자신에게 패스하라고 말했고 모든 슛을 성공시켰다." - 데럴 암스트롱


"천재. 천재. 오직 천재. 다른 말은 필요없다." - 알론조 모닝


"샤킬 오닐은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다. 앤퍼니 하더웨이를 만났으니 말이다." - 데릭 하퍼


"그가 NBA의 최고의 가드라는데 나도 이견을 달지 않겠다." - 게리 페이튼


"그와 플레이 함으써 내가 더욱 성장할것이라는데 동의한다." - 제이슨 키드


"그가 농구라는 게임에서 못하는 것은 없다." - 크리스 웨버


"페니의 부상은 NBA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의 아픔이다." - 찰스 바클리


"페니는 제 2의 조던이며 전문적이고 완벽하다."

"잭슨이 나에게 그를 수비하라고 말했을 때 그건 나에게 힘든 하루가 될것이라는것과 같았다." - 스카티 피펜


"난 그와 동등했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 했다."

"페니만큼 내 앞에서 자신감 넘치는 선수는 없었다."

"매직은 두렵지 않았지만 페니는 두려웠다." - 마이클 조던



이렇게 NBA 미래. 더 나아가 감히(?) 마이클 조던의 후계자로도 주목 받았던 페니 하더웨이는 3년차 시즌. 82 전 경기에 출전하여 21.7득점 4.3리바운드 7.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또 다시 필드골 성공률도 51.3%를 넘겼습니다. 결과는 2년 연속 NBA 퍼스트팀 가드! 이제 막 데뷔한 애송이 가드가 3년 동안 루키 올스타 MVP. 퍼스팀 2회. 준우승 1회라는 커리어를 쌓은 것입니다. 


하지만 페니 하더웨이의 전성기는 딱 여기까지였습니다. 화려했던 페니의 95-96시즌은 플레이 오프에서 다시 만난 마이클 조던의 시카고 불스에게 4-0 스윕을 당하며 끝났고, 이후 팀 동료 샤킬 오닐은 LA로 떠났습니다. 




*사진출처: http://solecollector.com

이후 페니는 무릎 부상과 각종 잔 부상들에 시달리며 계속해서 기량이 하락해 갔고, 1999년을 끝으로 화려했던 올랜도 매직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피닉스 선즈로 이적했습니다. 


이후의 커리어는 기대치에 비해서는 보잘 것 없었던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여담으로 페니의 고질적인 무릎 부상의 원인이 그가 어린 시절 빈민가에서 다리에 맞았던 총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페니 하더웨이는 과대 평가의 아이콘이라는 이야기를 들을만도한 선수였습니다. 전성기라고 해봐야 올랜도 매직에서의 2년차 또 3년차 시즌. 딱 두 시즌 정도를 꼽을 수 있었고, 진지하게 MVP로 거론된 적도 없었으며, 팀의 더 맨으로서 팀을 정상에 올려 놓은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가 전성기 때 기록한 21-4-7의 기록은 르브론... 아니 이 친구는 클래스가 너무 높으니 제외하고, 리그에서 어느 정도 슈퍼스타급 선수라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기록할 수도 있을 성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러셀 웨스트브룩 기록을 보십시오!)


하지만 지금 80년대생들에게 페니 하더웨이는 그저 그런 선수로 기억되질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건 그가 우리에게 남긴 강렬한 추억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페니는 NBA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들어와 인기를 얻어가던 무렵, 그 상승가도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지른 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 http://photobucket.com

잘 생긴 얼굴, 멋이 나는 몸매와 유니폼 핏, 젊은 신생팀을 기적 같이 결승전으로 이끌었던 선수. 이타적인 플레이를 하다가 중요할 땐 마치 괴물 처럼 득점을 마구 쏟아 붓던 선수. 때로는 같은 팀 동료들 조차 놀랄 정도로 창의적인 패스와 센스 넘치는 플레이를 보여주었던 선수. 역대 최고의 선수와 팀이라는 마이클 조던과 시카고 불스에게 90년대 첫 패배를 안겨다 주었던 선수. 마이클 조던이 인정하고 또 두려워 했던 선수.


아마도 우리가 NBA를 접하기 시작했을 무렵, 혜성 같이 나타나 정말 짧지만 화끈하게 타오르고 사라진 선수이기에. 지금 우리가 그를 더 사랑하고 추억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장 좋아하는 선수로 페니 하더웨이를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습니다. 저는 단 1초도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마도 제가 죽는 날까지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남들은 "거품이었다! 과대평가의 아이콘이다! 솔직히 그때 리그가 너무 띄워주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사진출처: http://hoopeduponline.com

페니 하더웨이. 그는 나의 NBA 선수 중 첫 사랑이었으며, 가난하고 어려웠지만 제 소중했던 학창 시절의 유일했던 영웅이었기 때문입니다. 



2부에서 계속...


.성ROCK


출처 : I Love NBA
글쓴이 : SROCK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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